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추웠고 눈도 많이 온 한해였다. 더운 날,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 야외에서 축구, 농구 등 스포츠를 즐기는 나 또한 이번 겨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토록 기다려온 FM2011(football manager 2011)만 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FM을 CM시절부터 10여 년 동안 사랑했던 나도 가끔은 fm을 잠시 멀리할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선택한 팀으로 전술을 짜고, 선수단을 개편하고, 몇 번의 연습경기를 치른 후 자신감이 들어 시즌을 맞이하지만 시즌을 시작하는 첫 경기를 패배하면 그 순간부터 그 팀이 나의 팀이라는 생각이 사라져버리고는 했다. 

그리고 2월이 지나고 날씨가 점차 따뜻해짐에 따라 3월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잠자고 있던 나의 몸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fm으로 병들어 있던 나의 정신 건강 또한 윈드 포스에서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축구경기를 볼 수 있으니 건강해질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3월 첫 날, 내가 기다리던 봄은 윈드 포스의 상쾌한 바닷바람이 아닌 살을 찢을 것 같았던 꽃샘추위 강풍에 멀어져만 갔다.


< 제주 vs 텐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첫경기!!!! >


기다렸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오늘 2011년 3월 1일 화요일, 삼일절이다. 하지만 제주의 축구팬들에게는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인 삼일절보다도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있었다.

지난해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까지 차지해 축구판을 흔들었던 제주 유나이티드는 선발명단에서는 크게 변화하지는 안했지만 ‘구자철 공백’ 이라는 아주 커다란 상처를 품고 오랜만에 제주 팬들 앞에 나타났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데뷔.

지난해 제주는 홈 경기 불패(12승 6무 무패)라는 성적을 거두며 안방에서 만큼은 세계 최강 바르셀로나도 두렵지 않을 기세였다. 또한 비교적 열세로 평가받는 중국의 텐진을 상대로 당연히 승리를 거두며 ‘평화의 섬’ 제주의 ‘아시아 정복’ 계획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또한 이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많은 축구팬이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제주를 응원하며 k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환영했다.


<경기 시작 전 몸을 푸는 제주 선수들의 컨디션은 아주 좋아보였다.> 



제주의 공격을 견뎌낸 텐진


제주는 선발 라인업과 전술면에서는 지난해와 크게 변화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더블 볼란치에 김은중을 원톱으로 내세운 4-2-3-1 시스템 이었으며 포지션별로 선수는 리그 최저 실점을 이끌었던 골키퍼 김호준, 포백 수비는 현직 국가대표 센터백인 홍정호와 제주의 주전 센터백 강민혁, 그리고 마철준과 김태민이 양쪽 윙백에 위치하였다.

포백 수비 라인에 위쪽에 위치한 중앙 미드필더는 지난해 구자철과 호흡을 맞추며 제주를 k리그 최고의 허리로 이끈 박현범과 다재다능한 김영신이 위치하였고 배기종과 이현호가 양쪽 날개, 김은중이 최전방 원톱으로 배치되고 산토스가 살짝 밑에서 받쳐주는 시스템이었다.

전반 초반 제주는 김영신의 패스를 이어받은 산토스의 슈팅을 시작으로 이현호, 김은중, 배기종이 잇달아 텐진의 골문을 위협하였지만 골키퍼의 선방과 2% 모자란 골 결정력으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그러나 중간 중간 텐진의 역습 또한 위협적이었다. 전반 10분과 37분 텐진의 22번 위 다바오는 제주의 수비수들을 뿌리치며 슈팅까지 이어졌으나 김호준 골키퍼의 선방으로 가슴을 쓰러내렸다.

그렇게 제주는 전반전에 활발한 공격력을 보여주었지만 굳게 닫힌 텐진의 골문을 여는데에는 실패하였다.


험난한 길이 예상되는 순간


강팀과 약팀이 경기할 때 강팀에게 가장 큰 적은 ‘방심’이란 녀석이다. 그 녀석은 단 한순간에 판단력을 흐트려 놓고 신체리듬을 훼손하기까지 아주 친해져서는 안 될 녀석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제주는 후반 9분 자신들도 모르게 그 녀석과 손을 잡아버렸다. 전반전의 비교적 우위를 점하면서 수비 라인이 느슨해진 것이다. 수비와 미드필더로 연결되는 패스가 패스미스로 이어지며 우측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텐진의 공격수 위 다바오가 방향만 바꿔놓는 슛으로 제주의 골문을 열어버렸다.

순간 제주의 관중석은 침묵이 흘렀고 제주의 벤치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주의 박경훈 감독은 경기 내내 압박수비가 안되어 크로스를 내주고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던 마철준 대신 강준우를 투입하며 수비를 견고히 하였다. 또한 배기종과 이현호 대신 ‘미친왼발’ 이상협과 수원에서 제주로 이적한 ‘영록바’ 신영록을 교체하며 공격진의 분위기 반전을 꾀하였다.

경기 후반 박경훈 감독의 교체 카드는 들어맞는 것만 같았다. 이상협이 중거리 슛으로 영점을 조준하기 시작하더니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고 동점골에 대한 관중들의 기대 또한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전광판 시계는 멈추고 경기 종료 직전 제주는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게 된다.

키커는 ‘미친왼발’ 이상협, 그는 추워서 끼고 있던 장갑마저 벗은 채 골에 대한 의지를 들어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슛팅...그러나 하늘은 야속하게도 홈팀 제주의 승리를 시기라도 한 듯 제주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상협의 왼발을 떠난 축구공은 골대 상단 크로스바에 맞으며 그대로 골라인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 고개를 들어라, 제주 유나이티드!>

구자철의 공백 확연히 들어나다


이날 경기에서 제주는 한 사나이가 정말 그리웠을 것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하며 독일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한 ‘어린 왕자’ 구자철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구자철이 빠진 제주의 중원은 경기를 진행할 수록 점유율 면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상대를 압도할만한 전진패스가 이루어지 않았으며 패스 또한 텐진의 센터백 듀오 리웨이펑과 조리치 마르코에게 번번히 차단당하였다. 중원에서 창의성과 세밀함이 뛰어난 구자철의 공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주는 이날 팬들에게 많은 질책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제주의 축구가 패스에 의한 공격 전개를 실행 한다 하지만 역습 상황에서도 다이렉트 패스가 아닌 짧은 패스를 하며 템포를 자꾸만 늦추었고 미드필더진의 잦은 백패스와 수비진의 순간 집중력 부족 등을 문제삼아 제주가 추구하는 축구인 ‘바람처럼 빠른 공수전환, 돌처럼 단단한 수비, 여자처럼 아름다운 축구’ 즉 삼다축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k리그 개막을 코 앞으로 앞둔 시점에서 비록 패하였지만 오늘 경기는 앞으로 긴 시즌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선수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라고 생각을 하고 싶다.


오프시즌, 제주가 전지훈련을 출발하기 전 제주의 GK 김호준은 이런 말을 했다.

“단기적으로는 팬들의 관심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팀이 상위권에 있어야만 자신의 팀이라는 생각이 들어 애정을 갖고 지켜봐 줄 것이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마디를 추가하고 싶다.

“fm 첫 경기를 패배하면 정말 할 맛이 떨어진다. 그니깐 시즌을 맞이하는 첫 경기 또한 매우 중요하다. 첫 경기에 한 해 농사가 다 걸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끈기 없는 사람들이 첫 경기만 보고 다음 경기를 보러 오지 않으면 어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제주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음경기까지 그런 걱정을 덜 할 수 있게 되었다. 올 해부터 시작한 ‘홈 경기 리콜 제도’ 덕분이다.

이 제도는 유료관중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 패한 경기의 다음 경기에만 적용된다. 유료 관중은 패배한 경기의 입장권을 출입구에 제시하면 별 다른 절차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연간회원에게도 패배한 경기 후 홈 경기 리콜 티켓을 한 장씩 지급한다. 단 또 다시 패했을 경우 그 다음 경기에는 정상적으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나도 제주 사람이다. 제주 축구 팬 여러분, 올해는 월드컵 경기장 찾앙가게마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