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 세계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그렇듯 소수만의 몫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선수들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 한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밖에 숨은 조력자들이 있기에 ‘스타’가 존재할 수 있다.

지난 시즌의 준우승 돌풍에 이어 올 시즌에는 6강 진출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에는 김은중, 산토스 등과 같은 스타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선수들이 많다. 제주의 소리 없는 영웅, 오승범을 만나 보자.


▲ 편안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한 오승범 선수

초등학교 때 시작한 축구…, 그리고 찾아온 시련

오승범은 초등학교 시절 또래의 아이들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한다. “체육 시간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제주 서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오셔서 축구를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부모님과 친척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셔서 큰 문제없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오승범은 사춘기 시절 선생님과 선배들의 꾸중에 축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특유의 인내심으로 극복해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대학 진학 등 환경과 여건이 지금처럼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고교 졸업 후 축구를 포기할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더니 지금까지 축구를 해왔는데 그만두기에는 아깝지 않으냐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죠.”라고 말했다.

대학대신 선택한 프로, 그리고 상무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처럼 오승범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의 문을 두드리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부모님과 이야기하던 중 어머니와 친분이 있으신 지인의 소개로 성남에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됐어요. 대학 진학을 못한 것에 후회가 남지는 않아요. 주위에 대학교에 가면서 운동을 그만두거나 대학교에 가서 그만둔 친구들이 많은데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누구나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프로가 아니다. 그리고 오승범은 그것을 좀 더 일찍 잡고 싶었고 비록 연습생 신분이었지만 성남 일화(당시 천안 일화) 2군에 입단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보다 벽은 높았고 혹독하기만 했다. 성남에서 기대만큼 기회를 주지 않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상무 입대를 택했다.

성남 입단 후 1군 경기를 한 번도 뛰지 못하고 있던 오승범은 ‘군대라도 빨리 갔다 와야지.’라는 생각에 상무행을 택했다. 이강조 감독은 성실한 모습의 그를 중용했고, 많은 기회를 얻어 오늘날의 오승범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남들은 군 시절 2년이 아깝다고 하지만 저는 정반대였어요. 인생의 전환점이자 전성기였죠.”

또한, 그는 상무에 대해 “아무래도 상무라는 곳이 군인이 모인 곳이지만, 자신만의 경기력을 마음껏 펼치라고 해 주신다. 그러다 보니 숨어 있던 재능도 표출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제주 유나이티드 No.8 오승범

‘달콤하고 씁쓸한’ 아테네 올림픽의 기억

그는 군인 신분이 되고 난 후에야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를 잡게 되었다. 상무에서의 활약으로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에 선발 된 것이었다.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은 김정우, 김동진, 최태욱, 이천수, 최원권 등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시아 지역예선에는 활약했지만 정작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불운을 맛봤다. 지역예선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치는 등 본선 진출에 이바지한 그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너무 아쉽죠. 개인적으로 무난히 아테네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초반에는 선발 출전도 자주 했고 교체로도 경기를 꾸준히 뛰었어요. 그러나 와일드카드 등의 변수 때문에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쉬워요.”

그 후 오승범은 성남과 포항을 거쳐 2008년 1월 7일 ‘고향 팀’ 제주 유나이티드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 제주 중원의 살림꾼, 오승범

제주 청년, 고향으로 돌아오다

“제주가 고향이다 보니 제주에서 응원해주시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많았어요. 또한, 저에게 거는 기대도 많은 것 같았어요. 보답하고 싶어 이적을 결심했죠. 개인 능력을 보여주기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며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제주 출신이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자신감이 더 생겼죠.”

그리고 그는 2008년 3월 15일 대전과의 원정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오승범의 득점은 제주의 시즌 첫 골이자 그가 제주 유니폼을 입고 넣은 데뷔 골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죠. 시즌 시작 3-4 경기 만에 1골 1도움을 올리며 승리를 이끌었는데 집중하면 잘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자신감도 생기고 부담감도 줄어든 경기였어요.”


▲ 인터뷰 내내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 오승범 ⓒ 제주 유나이티드

그렇다면 오승범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난 시즌 서울과의 챔피언 결정전을 꼽았다. “작년 서울과의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선발 출장을 했어요. 그런데 전반전 종료 직전 시도한 슛을 김용대 골키퍼가 펀칭으로 막아낸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슛이 들어갔다면 ‘어쩌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제주 입단 4년 차인 그는 올 시즌에 대해 어려운 시즌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지난 시즌 제주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어린왕자’ 구자철이 독일로 이적하게 되면서 시즌 시작 전부터 구자철의 공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그리고 오승범 또한 구자철의 공백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수비적인 성향이 짙어요. 공격에서 경기가 안 풀리면 ‘구자철이 없어서 공격이 풀리지가 않네.’라는 말을 들을까 봐 부담감이 있었어요.”라고 전했다.

오승범은 올 시즌 제주가 치른 25경기 중 24경기에 출장하며 4도움을 기록하는 등 제주 중원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언제나 남들보다 한걸음이라도 더 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언제 체력이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는 한 매 경기 온 힘을 다해야죠.”라며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


▲ 팬들이 있기에 그는 멈추지 않는다. ⓒ 제주 유나이티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느 덧 프로 10년 차를 맞이한 오승범. 그는 축구선수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을 친구들이 응원해줄 때라고 했다. “어린 시절 같이 축구하던 친구들이 모두 축구를 그만둬버려서 축구를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라고 말을 땐 그는 “어린 시절 힘든 것을 극복해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저를 보며 친구들은 항상 부러워해요. 칭찬을 해주고 응원을 해주면 ‘축구선수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죠.”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모두가 똘똘 뭉쳐 극복해낸 제주. 그러나 최근에는 홈경기 2연패를 비롯해 5경기 연속 무승 (3무 2패)을 거두며 다소 주춤하고 있다.

그는 “크고 작은 사고들과 선수들의 이적 등으로 팀이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어수선한 분위기인 것이 사실이에요. 이겼어야 할 경기에서 패배한 경기도 많았고 비긴 경기도 많았어요.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선수들도 의기투합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느덧 베테랑이 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공은 둥글며 축구는 앞일을 예측할 수 없으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서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K리그와 팬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오승범의 사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팬들의 관심에 더 목말라 있는 ‘소리 없는 중원의 지배자’ 오승범. 그는 승리를 위해 묵묵히 축구화 끈을 동여매고 경기를 기다리고 있다

K리그 명예기자 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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